[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시너지를 내라
- 윈스턴 처칠은 영국을 위해 전쟁을 지휘해 줄 것을 요청받자
자신의 전 생애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해 온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우리가 다룬 모든 습관들은 바로 시너지(synergy)를
창출하기 위해 준비해 온 것이다.
- 시너지야말로 올바로 이해하기만 하면 모든 생활에서 가장 높은 차원의 활동이다.
즉, 다른 다섯 가지 습관의 진정한 시험이요 표현이다.
- 시너지의 가장 고차원적인 형태는 인간만이 가진 네 가지 천부능력(자아의식, 상상력, 양심, 독립의지)과
승-승을 하려는 동기, 그리고 공감적 경청기술을 가지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직면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것이다.
- 시너지가 가져오는 결과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
이를 통해 이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대안들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시너지야말로 원칙 중심 리더십의 본질이다.
또한 원칙 중심적인 부모 역할의 본질이기도 하다.
시너지는 사람 내면의 가장 큰 힘을 더욱 증가시키고 그 힘을 통합해 주며 또한 폭발시킨다.
우리가 지금까지 다룬 모든 습관들은 시너지란 기적을 창조하기 위한 준비라고 할 수 있다.
- 그러면 시너지란 무엇인가? 간단히 정의하면 시너지는 전체가 각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각 부분들 상호간에 갖는 관계는 전체의 일부분이고, 그 자체가 전체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것은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최대의 촉매작용을 하고 최고의 역량이 있으며,
가장 큰 통합을 이루게 하는 가장 멋진 부분이기도 하다.
- 이런 창조적인 과정은 가장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 결과가 어떻게 될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앞으로 부딪히게 될 위험과 도전들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 모험정신, 탐구정신, 창조정신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내면적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는 반드시 베이스캠프라는 안락한 지대에서 나와 낯선 미지의 황야에 직면해야 한다.
우리는 개척자이며 새로운 길을 찾는 탐험가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뒤따라올 수 있도록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영토, 새로운 대륙을 개척해야 한다.
- 시너지는 자연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두 개의 식물을 서로 가까이 심어 놓으면 그 뿌리들이 얽혀서 주위의 토양을 더욱 비옥하게 하기 때문에
이를 각각 따로 심을 때보다 훨씬 더 잘 자라게 할 수 있다.
- 또 두 개의 판자를 함께 포개면 각각 따로 지탱할 수 있는 무게보다 훨씬 더 큰 무게를 지탱할 수 있다.
이것은 전체가 각 부분의 합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즉, 하나 더하기 하나는 셋 호은 그 이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 자연으로부터 배운 이러한 창의적인 협력의 원칙을 사회적 상호작용에 적용해 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생활은 시너지를 관찰하고 이것을 실행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힘을 합해 아기를 낳아 세 식구를 만드는 것이 바로 시너지이다.
시너지의 본질은 차이점을 인정하는 것, 서로의 차이점을 존중하고 강점을 활용하며,
나아가 약점에 대해 서로 보완을 하는데서 나온다.
- 우리는 분명히 남자와 여자 그리고 남편과 부인이 갖고 있는 신체적 차이를 가치 있게 생각한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가진 사회적, 정신적, 감정적 차이점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이러한 차이도 신나는 인생을 창조하는 멋진 원천이 될 수는 없을까?
- 서로가 진정으로 자기 성취를 하고 자기 존중의식과 가치의식을 육성하며
독립적으로 성숙하여 점차 상호의존적으로 되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는 없을까?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하여 시너지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할 수는 업승ㄹ까?
- 자기 보호적인 측면은 더 적어지고 적대감은 줄어들고 이기심도 더 적어지면서 봉사와 헌신을 하는
패러다임을 만들 수는 없을까?
지금보다 덜 방어적이고 덜 보호적이고 덜 정치적이면서도 좀 더 개방적이고 더 큰 신뢰를 주고
많은 것을 베푸는 패러다임을 가질 수는 없을까?
- 나아가 지금보다 소유욕이나 비판적인 사고는 줄이면서 더 큰 사랑, 더 많은 보살핌의 패러다임을 가질 수는 없는가?